전차에서 내리면 보이는 풍경
구마모토 시내 전차 ‘혼묘지입구’ 정류장에 내린 것은 3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에는 아직 차가운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하늘 빛은 어딘가 부드러워져 봄이 가까웠음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다. 이 곳은 상점가의 번화함과 대비되는 조용한 주택가로, 노면전차의 경적 소리가 조금씩 멀어지자 동네의 한적한 분위기가 더욱 강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 이세리강을 건너 발길을 재촉하니, 산등성이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좌우로 늘어선 낡은 석등, 그 너머로 이제 막 새순을 틔우기 시작한 나무들의 산그림자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바로 구마모토 성 북서쪽에 우뚝 선 나카오산, 즉 ‘혼묘지산’이다.
가토 기요마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활약하며,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호랑이 사냥’의 무용담을 남긴 맹장이다. 조선에서의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뒤 구마모토 성을 쌓고 히고 지역을 통치했던 그는, 1611년(게이초 16년) 오십 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언에 따라 자신이 축조한 구마모토 성 천수각과 같은 높이의 땅에 묻혔다고 전해지는데, 그 장소가 바로 혼묘지의 조치뵤(浄池廟)다.
인왕문을 거쳐 혼묘지 경내로 이르는 길
완만한 경사길을 5분쯤 오르자, 참도의 기점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인왕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약 20미터, 너비 약 14미터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가토 가문의 가문(家紋)인 뱀의 눈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은 1920년(다이쇼 9년) 철근 콘크리트로 건립된 것으로, 이즈모 대사(出雲大社)의 대형 도리이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고바야시 도쿠이치로의 기증에 힘입어 세워졌으며, 현재는 국가 등록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문 양쪽에는 아형(阿形)과 훔형(吽形)의 두 인왕상이 자리하여, 날카로운 눈빛과 우람한 근육은 10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박력을 간직하고 있는데, 방문자로 부터 나쁜 기운을 한 치도 남김 없이 떨쳐내기라도 할 듯 용맹히 팔을 치켜든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문을 통과하면 돌길로 된 일직선으로 뻗은 참도 양쪽으로 벚나무 가로수와 열두 개의 탑두 사원(대형 사찰의 경내 혹은 주변에 위치한, 독립된 작은 사원)이 조용히 늘어서 있다. 3월의 벚꽃은 아직 단단히 오므린 꽃봉오리 상태였지만, 가지 끝에는 희미하게 붉은 기운이 감돌아, 몇 주만 지나면 꽃이 피어나리라는 예감이 전해져왔다. 이끼 낀 돌담 너머로 작은 법당 지붕이 살짝 보이는 탑두 사원들은, 저마다 오랜 세월을 조용히 새겨온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참도를 걷는 사람은 드물었다. 개를 산책시키는 노부부, 묵묵히 조깅하는 운동복 차림의 학생. 봄볕이 돌길에 부드럽게 내려앉은 풍경을 보며, 지역 주민들에게 이 길은 신앙의 장소인 동시에 일상에 녹아든 삶의 일부임을 알 수 있었다.
무나쓰키간기 — 176단의 시련

참도 끝, 혼묘지 대법당 앞에 서자 그 뒤로 급한 각도로 뻗은 돌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무나쓰키간기(胸突雁木)’라 불리는 176단의 계단이다. 이름 그대로, 가슴이 찔릴 듯한 급경사다. 한 단 한 단 발판이 좁은 것이 과거의 규격을 상상하게 한다. 현대인에게는 조금 작게 느껴지는 이 계단은 발밑이 조금 불안할 지 모르지만, 오르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지 기대하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이 176단의 계단의 중앙에는 수백여개의 석등이 줄지어 서 있는데 이 정도로 많은 석등이 계단을 뒤덮은 풍경은 보기 드문 것이 아닐까 싶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으로 무너지고 손상된 것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그 상처의 흔적도 이 땅의 역사의 한 페이지로 새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내딛을수록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구마모토 시가지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 구마모토 성의 천수각이 희미하게 보였다. 3월의 공기는 아직 차가웠지만, 목덜미로 미지근한 땀이 흘렀다.
기요마사가 ‘천수각과 같은 높이’에 잠들기를 원했던 이유가, 이 풍경을 보고 나서야 조금은 납득이 갔다. 성을 쌓고, 성과 함께 살다가, 성과 마주보는 자리에 영면하는 것—그 선택에는 무장으로서의 자부심과, 구마모토 땅에 대한 깊은 애착이 담겨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침내 176단을 다 오르자, 드디어 기요마사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묘소, 조치뵤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치뵤 — 영웅이 잠든 곳

조치뵤는 가토 기요마사의 법호(法號) ‘조치인덴(浄池院殿)’에서 이름을 따왔다. 건물 전체가 기요마사의 묘로, 정면에는 그의 목상(木像)이 안치되어 있다. 그 목상 바로 아래, 지하 깊은 곳에 기요마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고 한다. 묘소 앞에 서자 묘한 정적이 주위를 감싸며, 저절로 마음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잡게 만들었다. 본묘 뒤쪽에서 피어오르는 향의 연기가 조용히 바람을 타고 산의 구석구석으로 이곳의 공기를 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611년 6월 24일, 기요마사는 구마모토 성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오십 세. 호랑이를 잡은 용사로, 성곽 건축의 명인으로, 치수(治水)와 농업 진흥에 힘쓴 영주로 구마모토 사람들에게 깊이 사랑받은 기요마사의 생애는 결코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름은 400년이 넘는 지금도 널리 전해지며, 지금도 이 땅에서 ‘세이쇼코상’이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이 가지는 영향력은, 놀랍게도 가토 이전에 이 땅을 수호한 이데타씨나, 그 이후 4백여년 이상 구마모토를 다스린 호소카와 이상으로 이 곳에서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조치뵤에서는 매년 7월 23일 밤, 기요마사의 기일 전날 밤에 ‘돈샤(頓写)’라는 법요가 거행된다. 신자들이 밤새 법화경을 필사하는 이 행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기요마사가 일련종(日蓮宗)에 깊이 귀의했던 까닭에, 혼묘지는 규슈 일련종의 대찰(大刹)로서 그 격식을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묘소 향로에서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자, 400년의 세월이 잠깐이나마 가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에도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참배객들이, 저마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 곳을 찾아왔을 지 궁금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동상까지 300단 — 정상에서의 만남

조치뵤 뒤편으로 돌아가자 위를 향해 또 다른 돌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앞으로 300단’—안내판을 보고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여기까지 온 이상, 간단히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25단 마다 계단참이 반복되는 돌계단이 산의 가파른 사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무들은 아직 겨울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가지 끝에는 작은 새순이 돋기 시작했다. 산의 봄은 시내보다 조금 늦게 찾아오는 것일까. 맑은 공기 속에 새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몇 차례 걸음을 멈추어 숨을 고르며 300단을 넘어섰다. 그 끝에,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이 서 있었다.
대좌를 포함하면 상당한 높이로, 그 모습은 구마모토의 하늘을 등지고 당당하게 서 있다. 갑옷을 입고 채배(采配)를 손에 든 기요마사는 어딘가를 바라보듯 그 시선은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쇼와 10년(1935년), 기요마사 서거 325주기를 기념하여 세워졌으니, 벌써 90년 이상 같은 자리에서 구마모토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구마모토 시의 풍경은 각별했다. 다양한 거리의 모습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구마모토 성의 천수각이 선명하게 솟아 있었다. 연한 봄 안개 너머로 아소산 연봉이 이어지고, 아리아케해의 빛이 아스라이 반짝이는 것도 같았다.
‘세이쇼코상’과 구마모토



혼묘지입구 정류장에서 조치뵤를 거쳐 동상에 이르기까지, 휴식을 포함해 약 삼십 여분. 정류장에서 인왕문에 이르는 길, 조치뵤까지의 176단, 그리고 다시 300단을 올라 동상과 마주하는 이 여정 자체가, 일종의 의례처럼 느껴졌다.
구마모토 성이 기요마사의 걸작임은 물론, 그가 정비한 치수 덕분에 구마모토 평야가 풍요로워졌다는 것도 이 지역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가토 가문의 시대는 2대로 막을 내렸지만, 기요마사에 대한 존경과 흠모는 40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세이쇼코상’이라는 호칭에 담겨져 구마모토에 살아 숨쉬고 있다.
계단을 내려오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동상의 모습이 아직 보였다. 구마모토 성을 멀리 바라보는 그 눈길은, 이 땅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참도의 벚나무 가로수에는 단단히 닫힌 꽃봉오리가 3월의 바람에 살며시 흔들리고 있었다. 앞으로 몇 주만 지나면 이 길은 연분홍빛으로 물들 것이다. 한참 걸어온 이 길을 되돌아가면서, 구마모토의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이, ‘세이쇼코상’이 잠드는 이 곳 혼묘지에 오롯이 압축되어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