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여행지구마모토성 : 풍화되지 않는 불굴의 유산

구마모토성 : 풍화되지 않는 불굴의 유산

오사카 성, 아이치의 나고야 성, 그리고 가장 유명한 일본 성들 대부분이 주로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지어진 반면, 구마모토 성은 철벽의 요새로 설계되었다. 그 치밀한 축성 기술은 1607년 구마모토 성에 강인한 명성을 안겨주었고, 이 명성은 1877년 세이난 전쟁을 거치며 하나의 전설로 굳어졌다. 패배를 인정한 전설적인 ‘마지막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는, 자신이 구마모토에서 관군에게 진 것이 아니라, 성의 설계자인 가토 기요마사에게 졌다고 고백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서막: 기요마사의 초기 성들

가토 기요마사는 1588년 히고의 영주가 되었을 때, 이미 영지 중심부에 성 두 채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성을 새로 지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기존 성들의 유지·보수와 확장 외에, 가토 기요마사가 진정한 의미로 성 건축을 경험한 것은 전국 각지의 수많은 무장들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섭정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해 사가에 나고야(아이치의 나고야와는 다름) 성을 짓게 된 것이 처음이었다. 성 건축이 본격화된 것은 그로부터 불과 10년 전의 일이었기에, 이 기술의 집결은 기요마사가 이후 공학적 경험으로 발전시킬 최신·최고의 아이디어들을 접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축성 분야에 있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은 조선의 울산성 전투에서 얻어진 실전 경험이었다.
울산 전투 병풍. 일본의 조선 침략 당시 울산의 본진. 후쿠오카 시립박물관 소장.
가토 기요마사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니시 유키나가에 이어 조선에 파병되었고, 1596년 휴전 기간 동안 한반도의 일본군 거점 요새화를 책임졌다. 그는 이 기간을 이용해 울산 항구 도시에 성을 급히 축성했으며, 이 성은 전쟁이 재개된 후 큰 가치를 발휘했다. 울산에서 기요마사의 군대는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에게 두 차례 포위당했는데, 첫 번째 포위는 1598년 거의 한 달간 지속되었으나, 결국 연합군이 물러날 때까지 버텨냈다. 전투의 피해는 작지 않았지만, 그 원인은 전투 자체보다 굶주림과 갈증에 있었다. 이러한 경험으로 부터 기요마사는 공성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성을 고안하기 위해 노력했고, 히고 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어떠한 적의 공격으로부터도 버텨낼 수 있는 난공불락 요새의 아이디어를 구마모토성에 집약시켰다.

생존을 위한 청사진

기요마사의 계획은 성의 지형 선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전의 구마모토 성은 언덕 남서쪽 기슭 낮은 곳에 지어져 있어, 적이 뒤편 언덕 위에서 공격할 가능성을 감안하면 공성전에 불리한 구조였는데, 새로운 성곽은 천수각을 언덕 남동쪽 꼭대기에 세우고, 성벽을 언덕 사면을 따라 내려가도록 쌓아 적의 접근 속도를 크게 늦추는 효과를 얻었다. 쓰보이 강을 성 앞의 해자로 활용하고, 하류의 수문으로 수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인공적인 부분 만이 아니라, 자연적인 부분도 적극 활용하였다.
성내 정원의 나무에도 실용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다

보다 명확한 전략들도 있었는데, 두꺼운 성벽은 당시 최신의 대포로도 요새 내부를 공격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특히 기요마사의 아이디어로 유명한 ‘무샤가에시(武者返し)’ 형태의 성벽은 경사면이 꼭대기에서 수직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구조로, 망루에서의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기어오르는 것이 불가능했다. 여러 겹의 성벽을 미로처럼 배치하고, 그 위에 49개의 망루, 18개의 망루문, 29개의 성문을 갖추어 적이 쉽사리 성내로 진입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만일 성내로 진입하더라도 효율적으로 포위 공격으로 섬멸할 수 있는 구조를 완성했다.

공성전을 전제로 한 더욱 방어적인 설계 아이디어도 있었다. 예를 들어, 가토 기요마사는 공성전 중 군사들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성내에 120개가 넘는 우물을 팠는데(현재 남아있는 것은 17개), 매년 가을 짙은 황금빛으로 물드는 천수각 앞의 유명한 은행나무도 원래는, 다른 식량이 없을 때 병사들이 열량이 풍부한 열매를 삶아 먹을 수 있도록 심어진 것이었다. 실제로 가토 기요마사는 혹시 모를 공성전 대비에 얼마나 집착했던지, 전설에 따르면 말린 고구마 줄기로 엮은 다다미와 토란 줄기를 섞은 벽 회반죽을 사용하여 성 자체를 반(半)식용 구조물로 만들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회복력의 유산

구마모토 성은 세이난 전쟁에서 50일간의 근대식 포격에 맞선 공성전을 승리로 이겨낸 이후, 수세대에 걸쳐 구마모토 시민들이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왔다. 400년 역사의 이 성이 2016년 지진 이후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지금도, 은행나무 성(銀杏城)은 온갖 재해에도 굴하지 않고, 도시의 상징으로 굳건히 그 모습을 지켜오고 있다.
Walter
Walter
A newcomer to the Adastra team, Walter has lived in Kumamoto off and on since 2018. A Houstonian born and raised, Walter was born in the heat, molded by it. He didn't know a cool breeze until he was already a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