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城)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은 중세 이야기가 펼쳐졌던 유럽의 성이나 디즈니 영화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궁전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에도 여러 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정교한 외관과 거대한 성벽을 보면, 이곳에 살던 사무라이와 다이묘를 유럽의 기사와 영주에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 성의 독특한 기원을 살펴보면, 성이 근대 역사를 형성하고 기록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일본에 있어 성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이해하기 수월할 것이다.
산악 요새: 최초의 일본 성
일본은 초기에 중국이나 한국의 궁궐의 영향을 받았지만, 일본만의 독자적인 성의 기원을 찾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방어의 거점으로 산 위에 세워진 요새인 **야마지로(山城, 산성)**가 그 시작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성들은 기본적으로 공성을 목적으로 지어졌는데, 수백 년에 걸쳐 궁병이 전투의 가장 주된 수단이었고, 보병과 기병이 이를 보완하는 구조였음을 감안하면, 높은 지형을 확보하는 것이 군사적 전략의 핵심이었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터닝 포인트: 칼과 창의 전장에 나타난 화승총의 시대
가마쿠라 시대에는 검 단조를 비롯해 금속 가공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전쟁의 기본 원리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1543년, 포르투갈 선박이 난파하면서 일본에 최초의 화승총이 전해진 것을 기점으로 상황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주로 포격전을 상정한 중국의 화약 기술이 이미 들어와 있었지만 제조 비용이나 규모를 감안하면 도입이 쉽지 않았다. 반면 화승총은 개인화기로 비용 면은 물론 기존의 무기들보다 훈련에 드는 시간이 훨씬 적다는 이점이 있었다. 아직 대규모 실전에서의 위력이 증명되기도 이전에, 서양으로부터 전래된 이 신무기가 향후 전장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 내다본 선각자가 있었으니, 바로 젊은 시절의 오다 노부나가였다. 그는 조총 부대에 특화된 전략과 훈련법을 구사하여 점차 영토를 넓혀가기 시작했으며, 이는 동시에 전쟁의 개념 자체를 180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성의 기본을 제시하다 : 아즈치 성

오다 노부나가와 이후에도 일본 통일을 목표로 삼은 후계자들에 의해 성의 기술도 계속해서 진화했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역을 장악한 후에는, 각지의 다이묘들을 지금의 사가현으로 집결시켜 조선 출병의 전진기지가 될 나고야성(아이치현의 나고야성과는 다른 성)을 짓도록 명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산, 언덕, 평야 등 다양한 지형에 성이 세워졌으며, 아즈치 성과 같이 대표적인 건축에서 많은 영감을 받으면서도 각자의 환경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특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다음 세대의 혁신: 가토 기요마사
사가의 나고야 성 축성 과정에서 이루어진 기술과 지식의 교류는, 가토 기요마사를 당대 최고의 축성 노하우를 지닌 다이묘 중 한 명으로 도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조선 출병을 통해 여러 차례 축성의 실전 경험을 쌓았고, 그를 기반으로 귀국 후 구마모토성을 최고의 방어 요새로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607년 완공 당시에는 이미 도쿠가와 막부 아래 일본 전역에서 전란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평화로운 태평성대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구마모토 성은 270년의 세월을 인내한 끝에 비로소 그 군사적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바로 메이지 유신의 마지막 내전으로 기록된 세이난전쟁이다. 구마모토성을 수비한 메이지 정부 관군은, 사이고 다카모리가 지휘한 사쓰마 반란군을 맞아, 수적 열세와 근대식 포격에도 끝끝내 버텨냄으로써 구마모토성의 견고함을 역사의 한 페이지에 깊이 새기게 되었다.
전쟁에서 평화의 시대로
길고 혼란한 전국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성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전쟁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전략적, 전술적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성이었지만, 평화가 보장된 시대에 이르러 건축가들은 권력과 권위의 상징인 이 거대한 구조물에 화려함, 호사로움, 색채를 더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호화로움은 실제 전투가 금지된 시대에, 도쿠가와 막부 체제하에서 얻어진 부와, 막부를 향한 충성심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히메지 성은 눈부신 흰 회반죽과 우아한 지붕으로 단장되어 ‘백로성(白鷺城)’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나고야 성과 오사카 성은 금빛 샤치호코와 금박 장식으로 치장되어 쇼군과의 특별한 인연을 나타내기도 했다.
일본의 성은 여러 면에서 시간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성이 불과 30~4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성은 저마다 다른 일본의 지형과 스토리, 시대상을 담아 내고 있다. 성은 외관과 내부를 가리지 않고, 그 목적 뿐만 아니라, 성주의 개성과 지역적 특색까지도 짙게 반영하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유산인 것이다. 유럽의 성과 같이 용을 물리친 전설은 없을지라도, 아직 까지 일본 각지에 남아 있는 많은 성들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