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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몬’의 도시, 구마모토

와사몬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기질과 문화

가미도리상점가(上通り/사진출처 : 구마모토현 공식 관광 사이트 포토 갤러리 https://kumamoto.guide/photos/)

구마모토에는 ‘와사몬(わさもん)’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남보다 먼저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 이라는 의미이다. 표준어로 가깝게 옮기면 ‘얼리어답터’에 가깝지만, 구마모토 사람들이 이 말을 입에 올릴 때는 어딘가 자부심이 느껴진다. 단순히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기질 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길러져 온 감성, 감각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일까.

실제로 70년대 구마모토에는 현대적인 ‘편집샵’의 원형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매장이 존재했으며, 대도시와 거리가 먼 지역임에도 해외 트렌드가 빠르게 전파되던 시절이 있었다. 패션에 큰 관심이 없을 지라도 이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게 들린다. 지방의 작은 도시가 어떻게 한 때 나마 일본 트렌드의 최전선에 설 수 있었는지―그 답의 힌트가 바로 ‘와사몬’에 담겨 있는 것이다.

어원: ‘와세모노(早生者)’

‘와사몬’의 어원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와세모노(早生者)’다. ‘와세(早生)’란 파종에서 수확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이 상대적으로 빠른 작물을 가리키는 농업 용어로, 자라는 속도가 빠른 품종이나, 환경적인 요인으로 빠르게 자란 작물 등 역시 ‘와세‘라고 불렸다. 여기에 사람을 뜻하는 모노(者)가 붙어 ‘남보다 먼저 무언가에 달려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어, 세월과 함께 음운 변화된 것이 바로 ‘와사몬‘의 정체다.

구마모토에는 이 ‘와사몬’과 더불어 지역성을 상징하는 유명한 말이 또 있다. ‘히고 못코스(肥後もっこす)’다. 말이 없고 고집스럽고 한결같으며 괴팍한― 구마모토 사람의 전형으로 자주 언급되는, 고집스러운 인물상을 가리키는 말이다(일본 3대 고집불통 중 하나로 알려져있다).

겉으로 보면 정반대처럼 보이는 이 두 단어지만, 사실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못코스‘든 ‘와사몬‘이든, 그 바탕에 깔린 것은 ‘남들과 같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는 사고 방식이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스타일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못코스‘라면,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와사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자기만의 기준을 굽히지 않고,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구마모토 사람들의 기질을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싶다.

구마모토는 왜 ‘빨랐을까’

나미키자카(並木坂/사진출처 : 구마모토현 공식 관광 사이트 포토 갤러리 https://kumamoto.guide/photos/)

솔직히 구마모토가 새로운 것에 민감한 이유는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렵다. 오랜 세월동안 해상 운송의 요충지로서 규슈의 관문 역할을 했던 나가사키, 19세기 말엽 하카타항 개항, 20세기 초 규슈제국대학 유치 등이 맞물려 본격적으로 규슈의 중심지로 떠오른 후쿠오카에 비하면 구마모토는 결코 규슈의 중심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이 지역을 다스렸던 번주와 가문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구마모토라는 도시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는 단연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가 꼽힌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가하여 한국 사람들에게는 악랄한 적장의 이미지로 굳어진 가등청정이 바로 그다. 기요마사라는 인물은, 한편으로는 구마모토성을 개보수하고 도로망과 하수로를 정비하는 등 탁월한 행정가의 면모도 두드러졌는데, 특히 당대의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는 등 ‘와사몬‘이라는 말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이를 몸소 실천한 개척자 였을런지도 모른다.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마모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토 기요마사지만, 실제로 가토 가문의 치세는 단 2대로 막을 내렸다. 그 이후 히고를 다스린 것은 바로 호소카와 가문으로, 당주는 센노리큐의 제자 호소카와 타다오키였다. 센노리큐가 누구인가? 라이프 스타일을 아우르는 철학을 다도라는 매체를 통해 새롭게 제시했으며, 사후에도 일본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 문하에서 지도를 받은 호소카와 타다오키 역시 문화를 중시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관심이 있었기에, 구마모토는 ‘와사몬‘의 정신이 뿌리내리기에 적합한 토양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선구자’ 그리고 ‘전설’

1976년, 24세의 아리타 마사히로(有田正博) 는 구마모토시에 ‘아웃도어 스포츠(アウトドアスポーツ)’라는 작은 옷가게를 열었다. 당시 일본 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미국의 라이프스타일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점포로, 훗날 ‘편집샵’이라는 개념을 일본에 정착시킨 선구자적 역할을 한 매장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인 1976년, 도쿄에서는 시게마쓰 오사무(重松理) 가 ‘BEAMS’를 창업했다. 훗날 대담에서 시게마쓰는 당시를 회상하며 “일본에서 가장 빠른 곳은 도쿄가 아니라 구마모토라고 늘 생각했다”고 말했다. 도쿄와 오사카를 뒤따르는 것이 지방 도시의 일반적인 모습이던 시대에, 구마모토는 때로는 도쿄나 오사카 보다도 먼저 최신 아이템을 들여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흥미로운 점은, 구마모토에서 유독 인기있는 아이템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구간을 청소할 때 신을 법한 장화를,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쿄에 가져가면 “촌스럽다”며 웃음거리가 될 법한 스타일도, 구마모토에서는 ‘와사몬‘ 스타일로 즐겁게 받아들였다. 유행을 좇기보다는, 유행을 자기 식대로 편집해서 즐기는 것―이 또한 구마모토 패션 문화의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리타는 이후 구마모토시의 샤워도리(シャワー通り)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매장들을 전개했고, 80년대에 들어서는 당시 아직 무명이었던 폴 스미스와 마가렛 호웰을 일본에서 최초로 선보인다.

1990년부터 약 10년간 낚시에 몰두하는 생활에 들어가며 공백기를 가진 이후, 1999년 ‘퍼머넌트(パーマネント, 이후 퍼머넌트 모던으로 변경)’의 개업과 함께 부활, 도쿄 아오야마에 지점을 둘 정도로 성장한다.

이후 퍼머넌트 모던(パーマネントモダン)은 25년간 업계의 유일무이한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2024년 은퇴를 선언한 아리타와 함께 전설로 남았다.

행정이 뒷받침한 ‘패션 타운’ 구상

구마모토의 ‘와사몬‘ 기질은 민간 점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당시의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이 추진한 ‘신섬유 비전(新繊維ビジョン)’이라는 지역 진흥 계획을 실시하였으며, 통산성과 일본패션협회의 주도로 구상된 패션타운 프로젝트 구상에도 포함되어 1998년에는 ‘패션 타운 서밋’이 개최되는 등 지역의 기질을 산업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민관 협력으로 구체화된 시기도 있었다.

또한 2011년부터 2015년까지는 ‘와사모다(ワッサモーダ)’라는 구마모토 고유의 패션 무브먼트가 전개되었다. 일반인 중에서 공모로 선발된 모델들이 미경험 상태에서 워킹을 연습하고, 지역 미용실의 협조를 받아 패션쇼에 서는―말 그대로 ‘와사몬‘의 이름을 내건, 시민 참여형 문화 행사였다.

지금도 이어지는 ‘와사몬’의 혈맥

신 구마모토 중심, 가미노우라(上乃裏)에 자리한 테라스(テラス)

현재 구마모토시의 가미도리(上通り)·가미노우라도리(上乃裏通り)·나미키자카(並木坂) 같은 거리에는 개성 넘치는 편집샵들이 지금도 늘어서 있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지역을 막론하고 쉽게 보기 어려운 아이템을 취급하는 가게들도 아직까지 존재하며, 옛 ‘와사몬‘ 정신은 형태를 바꿔가며 이어지고 있다.

브랜드 쪽에서도 구마모토발 움직임은 작지만 확실하게 이어지고 있다. 구마모토와 후쿠오카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소재나 기법을 응용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Tigre Brocante(구마모토 지점은 Dragon Brocante), 문화복장학원을 거쳐 파리의 Studio Bercot에서 실력을 쌓은’JUN OKAMOTO’, 메이드 인 재팬을 고집하는 ‘Factelier’, 프렌치 리넨 셔츠를 중심으로 하는 ‘gogaku’―구마모토를 거점으로, 혹은 구마모토 출신자에 의해 탄생해 국내외에서 지지받는 브랜드가 지금도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마치며

와사몬‘은 원래 올벼(早生稻)를 어원으로 하는, 지극히 소박한 농업 용어였다. 그것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기질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고, 마침내 한 지방 도시의 상징이자 한 때 선구자로 불릴 만큼의 문화적 에너지로 자라났다.

패션이나 예술, 대중문화의 팬이 아니더라도 이 이야기에는 하나의 교훈이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 그 자체가 가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들의 맥락으로 다시 편집하고, 누가 뭐라 하든 즐기는 당당함―그것이야말로 구마모토라는 도시가 오랫동안 지녀온 ‘와사몬‘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단어 하나를 기준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 도시의 기질과 역사가 떠오르고, 여전히 이 도시 전반에 그 문화가 깔려있음을 느끼게 된다. 한 때 구마모토 문화의 전성기를 상징하던 샤워도리나, 여전히 맥을 이어오고 있는 가미도리, 그리고 오늘날 구마모토 스타일의 중심지로 자리잡기 시작한 가미노우라도리를 걸으며, 반세기도 더 전에 이 거리를 누볐던 ‘와사몬‘들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것도 흥미로운 체험이 되지 않을까.

Kumamoto Castle Tours

See Kumamoto Castle with a local guide

Small-group walking tours in English, led by guides who live here. Check dates and reserve your spot in a couple of minutes.

Jaewoong
Jaewoong
Born in Seoul, South Korea. After living in Tokyo, Osaka, and Fukuoka, relocated to Kumamoto in 2026. A dreamer who finds solace in places where ordinary days and memories has sedimented—where the passage of lives still softly haunts the 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