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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숙청 : 일본 성들의 몰락

이전 글에서 우리는 일본 성의 기원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건축학적 걸작으로의 발전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그 화려함과 군사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더욱이 오랜 시간 일본 국민들에게 사랑 받아온 성들이 전국에 걸쳐 세워진 수많은 성들 중 극히 일부라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예를 들어, 역사 기록에 따르면 구마모토 성은 주변 마을에 공격에 대비한 방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위성 성 일곱 개를 거느리고 있었다고. 그렇다면 이 성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일본 성들의 몰락을 가져온 숙청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메이지 시대의 구마모토 성 삽화

1603년 도쿠가와 막부 아래 일본이 통일되자, 성의 기능은 공성전을 전제로 한 철벽의 요새에서, 새 막부의 권위를 만천하에 위시하는 한편 평화가 도래한 풍요의 시대를 상징하는 웅장한 건축으로 전환되었다. 당시의 기록들에 따르면, 구마모토 성처럼 새 막부가 세워지기 이전에 세워진 성들은 병력 운용이나 비축 물자의 운반 등 실용성에 바탕을 둔 반면, 이후 등장한 히메지 성(백로성)이나 나고야 성(황금 지붕 장식으로 유명한)은 기본적인 구조부터 이전의 성들과는 차별화되었고, 전체적으로 밝은 바탕색과 다채로운 금장식 등 미적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통한 권위 과시에 더 치중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란에 대한 두려움: 일국일성 원칙

우토에 남아 있는 성터의 석벽 잔해

화려함에 관계없이, 새 막부는 성들을 새로운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전쟁 무기로 인식하였다. 각 번 내에서의 봉기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막부는 1615년 ‘일국일성령(一国一城令)’을 발령했는데, 이 법령은 각 번의 영주로 하여금 자신이 통치하는 영지 내의 성 중 하나를 제외한 모두를 철거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구마모토 번에서는 구마모토 성만 남고, 우키, 우토, 그리고 모든 위성 성들이 해체되었고, 이 첫 번째 대숙청에서 사라진 성들의 대부분은 주성이 아닌 보조 성이었지만, 도쿠가와 가문이 승리한 이후 새로 임명된 영주들 중 많은 이들이 1601년 이후 자신의 성을 새로 쌓았다. 이는 에도 이전 시기 성의 발전 과정에 대해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해 줄 수 있었던 성들 대부분이 이 시기에 소실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쿠마쓰: 막부의 몰락

성의 천수각은 메이지 정권에 의해 철거되었지만, 성벽과 망루 일부는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영어 문헌에서는 막부 말기의 내전들이 메이지 유신과 혼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쇼군 아래의 군사 독재에서 입헌 군주제로의 전환은 결코 유혈 사태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이난 전쟁을 마지막으로 내전이 종식된 이후, 메이지 정부는 기존의 번 제도를 폐지하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縣)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각 지역을 상징해왔던 성들을 하나 둘 철거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파괴된 성의 수는 에도 시대에 해체된 수에 비하면 훨씬 적었지만, 근현대라는 시대를 생각하면 사회 전반에 미친 그 영향은 훨씬 더 큰 것이었다. 후쿠오카 성과 같이 규모나 역사적 가치치 등 여러 면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번의 성들도 지도에서 지워져나갔으며, 전성기의 모습은 커녕 그 흔적조차 거의 남지 않은 경우도 허다한데, 이것이 여러 일본의 성들이 역사의 전화점에서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살아남은 성들은 새로 창설된 황실 군대가 주둔지로 접수한 성들과, 마쓰모토 성처럼 지역 주민들이 지켜낸 극소수의 성들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희생양

군사 주둔지로 사용되던 소수의 성들은 수십 년 후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폭격 목표가 되었고, 이 폭격으로 현재의 도쿄인 에도에 위치한, 일본에서 가장 웅장한 성으로 손꼽히던 에도 성이 소실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오늘날, 전근대 시대부터 천수각이 보존된 성은 단 12곳(현존 12천수):

국보로 지정된 5곳: 히메지, 마쓰모토, 이누야마, 히코네, 마쓰에.

문화재로 지정된 7곳: 히로사키, 마루오카, 비추 마쓰야마, 마루가메, 마쓰야마, 우와지마, 고치.

삽화: 구마모토 성에서 가고시마 반란군과 황군의 충돌 장면 © 대영박물관 이사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선스(CC BY-NC-SA 4.0) 적용.

구마모토 성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쿠데타 시도인 세이난 전쟁(사쓰마 반란) 중에 천수각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유적지들은 모두 시민에게 반환 되었고, 이를 계기로 복원을 위한 전국적인 운동이 일어나 오사카나 구마모토등, 1960년대에는 콘크리트 복원 공사를 통해 일본을 근대로 이끈 성들의 본모습이 재현되었다. 오랜 세월 재해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해 온 성들이, 비로소 봉건 영주의 전쟁 요새에서 문화적 회복력의 상징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Walter
Walter
A newcomer to the Adastra team, Walter has lived in Kumamoto off and on since 2018. A Houstonian born and raised, Walter was born in the heat, molded by it. He didn't know a cool breeze until he was already a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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