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각종 정보옛 구마모토를 천천히 걷다 — 신마치·후루마치를 발견하는 여행

옛 구마모토를 천천히 걷다 — 신마치·후루마치를 발견하는 여행

구마모토역에서 노면전차를 타고 몇 분만 달리면, 차창 밖 풍경이 어느 순간 조용해진다. 현대적인 콘크리트 건물의 행렬이 끊기고, 격자 창문이 달린 목조 상가와 거무스름한 흙벽 창고가 하나둘 얼굴을 내민다. 여기가 바로 신마치·후루마치 지구다. 약 400년 전,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성과 함께 조성한 성하 마을의 구획은 도시가 계속 바뀌는 동안에도 지금의 자리에 눌러 앉은 그대로 느긋하게 세월의 흐름을 뒤로 하고 있다. 유명 관광지처럼 사람과 카메라로 붐비지 않는다. 주민들이 여전히 살고 있고, 가게들은 매일 아침 문을 연다. 이 곳의 역사는 유리 케이스 안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펼쳐지는 일상의 일부이며, 그것이 바로 이 동네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긴 세월을 지켜본 돌다리

신마치와 후루마치의 경계를 흐르는 쓰보이 강에 놓인 “메이하치바시”는 메이지 8년(1875년)에 태어난 다리다. 도쿄의 니혼바시와 황거의 니주바시를 만든 명석공 하시모토 간고로가 고향에 돌아와 놓은 것이다. 돌 난간에 손을 얹으면 서늘하고 단단한 감촉이 전해진다. 강물은 잔잔하고, 둑 위의 풀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놀랍게도 이 다리는 2016년 구마모토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고, 손상된 일부 난간도 안쪽으로 쓰러지도록 설계되어 있어 소실되지 않았다. 140년 전 석공의 판단이 머나먼 미래의 재해로부터 다리를 지킨 셈이다.
상류 쪽에는 신고후쿠바시를 사이에 끼고 “메이주바시” 가 있다. 이름 그대로 메이지 10년(1877년)에 지어졌다. 이곳은 건널 때마다 계절의 변화가 전해진다. 강 주변으로 피고 지는 각종 꽃들, 나뭇잎의 색이 변하는 과정, 이 모든 것이 이렇게도 일상과 가까이 있다는 것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아마도 이 다리들이 100여 년 이상 지켜본 풍경의 자취가, 켜켜이 쌓여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신비로운 체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마모토성을 되살린 작은 사진관

메이주바시를 건너 신마치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동쪽으로 향하는 만세바시를 뒤로 담쟁이 덩굴에 뒤덮인 낡은 목조 건물이 나타난다. “도미시게 사진관”으로, 메이지 3년(1870년) 창업하여 2006년에는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로 등재되었다. 구마모토와 인연이 깊은 문호이자 교육자였던 고이즈미 야쿠모(라프카디오 헌)와 나쓰메 소세키 역시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보다 더 이 사진관이 맞이한 극적인 순간이 있다. 바로 1877년 세이난 전쟁 직전으로, 관군 관계자들이 전쟁의 여파로 구마모토성이 소실될 것에 대비해 사진을 남겨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사진들이 훗날 쇼와 시대(1926~1989) 천수각 재건 공사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지대한 공헌을 했다. 150년의 세월을 버텨온, 담쟁이 덩굴에 뒤덮인 그 모습을 바라보며, 동네 사진관이 구마모토성을, 구마모토의 문화와 정신을 지켜낸 작은 영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시간을 잊게 만드는 다이쇼 시대(1912년~1926년) 건축

구불구불한 도로와 선로가 인상적인 센바바시의 교차로를 거쳐 서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자연스레 “나가사키 지로 서점”에 발길이 닿는다. 다이쇼 13년(1924년)에 지어진, 일본식과 서양식에 중국풍 장식까지 한 데 뒤섞인 독특한 건축이다. 그야말로 신마치 지역을 상징하는 건물이자, 전차 정류장과 더불어 거리의 풍경을 아우르는 명소다. 아쉽게도 1층의 서점은 2024년 6월 말에 영업을 종료했지만, 2026년 4월에 각종 이벤트와 문화적 교류가 펼쳐지는 “나가사키 지로 Ato Salon”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새로운 장을 맞이하는 셈이다.
여전히 영업 중인 2층의 나가사키지로 다방으로 올라가면, 창가에는 큰 커브를 그리며 유유히 지나가는 전차, 고풍스러운 정류장과 건물들을 중심으로 잊혀진 과거의 풍경이 펼쳐진다.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 위의 노트를 펼쳤다. 지금까지 다녀간 여행자들의 글씨가 빼곡했다.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일본어보다 외국어가 더 많을 정도다. 이 곳을 거쳐간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창 밖의 풍경을 보는 동안 시간 가는 걸 잊어버렸다” 이 장소의 특별함을 가장 잘 표현한 한 줄이 아닐까.

강을 건너, 후루마치 골목으로

쓰보이 강을 건너면 거리의 질감이 살짝 달라진다. 후루마치다. 골목이 좁아지고, 빌딩 틈새에 목조 건물들이 끼어 있다. 장어처럼 가늘고 길게 마치야(일본의 전통적 주택의 일종, 성하마을에 건설된 가게가 병설된 도시형주택)가 늘어서 있던 곳으로, 지금도 살아남은 오래된 건물들이 각자 새로운 역할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하야카와 창고”는 메이지 10년(1877년)에 지어진 술 양조장이 전신인 대형 목조 건물로, 시의 경관형성건조물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음악과 연극 이벤트 장소로 쓰인다. 주말이면 드러난 나무 대들보 아래로 라이브 음악이 울려 퍼진다. 바로 옆 “카와카미 주류점”은 마치야를 리노베이션한 술가게로 건축상도 받았다. 붙박이장을 와인 셀러로 바꾸는 등 창의적인 개조가 돋보인다. 가게 주인이 구마모토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술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소주 한 병을 골라 들고, 온 길을 천천히 되돌아왔다.

하루의 마무리, 마치야에서 커피 한 잔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커피 갤러리(珈琲回廊)”는 메이하치바시 바로 옆, 후루마치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 자체가 이미 하나의 스토리다. 120년 전의 건축으로 잡화점과 가다랑어포 가게로 쓰였으며, 메이하치바시를 만든 명석공 하시모토 간고로가 작업에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이 동네와의 인연이 깊은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건물을 그저 현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구석구석 과거의 상인들이 남긴 흔적들을 느낄 수 있게 한 배려가 이 곳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일반적으로 동시에 대여섯 종류의 원두를 제공하는 시내 주변의 카페 들과 달리, 커피 갤러리는 세계 각지에서 들여온 약 20여종의 원두를 취급한다. 더욱이 맛이나 성질을 세세하게 표기해 놓은 데다, 직원이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주니 취향에 맞는 원두를 찾기도 쉽다. 마음에 드는 원두를 고르면 직원이 바로 그 자리에서 볶아준다. 향긋하고 고소한 향기가 실내를 가득 채우는 동안, 성하마을의 풍경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도 근사하다. 후루마치와 신마치 산책의 마무리로 이보다 잘 어울리는 곳은 없을 것이다. 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부터 다이쇼, 쇼와, 헤이세이, 레이와 까지, 시대가 변화하는 가운데 이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온 지역의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신마치·후루마치가 마음 한 켠에 남는 이유

이 동네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역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역사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지금도 살아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도 매일같이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고, 창고에는 음악이 흐른다. 마치야에서는 지금도 커피 볶는 냄새가 난다. 관광객을 위해 연출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단편이 흘러갈 뿐이다. 구마모토를 관광을 구마모토 성으로 끝내는 것은 너무도 아쉽다. 전차를 타고, 천천히 걸으며, 한적한 골목길에 발을 들여보자. 그러면 도시가 나긋나긋 속삭여온다. 그리고 아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머물고 싶어질 것이다.

Jaewoong
Jaewoong
Born in Seoul, South Korea. After living in Tokyo, Osaka, and Fukuoka, relocated to Kumamoto in 2026. A dreamer who finds solace in places where ordinary days and memories has sedimented—where the passage of lives still softly haunts the 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