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도(茶道)’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盆石, 즉 ‘본세키’는 어떨까? 다도와 본세키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부터 존재해왔고, 선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센노 리큐(千利休)에 의해 혁신되었다는 공통점으로 연결된 일본 고유의 문화이다. 오늘은 본세키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일본 문화를 엿봄과 동시에, 구마모토와 본세키가 어떻게 관련되는 지, 그 배경을 알아보고자 한다.
본세키란 무엇인가?

盆石(본세키)는 문자 그대로 ‘쟁반 위의 돌’이라는 뜻으로, 그 역사는 우리가 아는 일본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한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정원을 조성하기에 앞서 참고 자료로 쓰기 위해 본세키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당시의 기술을 감안하면 이러한 아이디어가 도입된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돌의 크기 등에 관한 세세한 규칙은 비교적 후세에 확립된 것이 많으나, 자갈에서 모래에 이르는 다양한 돌, 숟가락, 깃털, 체, 젓가락 등 사용되는 재료와 도구 등은 초기의 그것으로부터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 내에서 먼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시대, 일생일대의 후지산을 답사를 마치고, 본세키로 그 풍경을 재현하여 영주에게 헌상하는 기술자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본세키는 실용적인 역할로 출발 했을 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화적 영감과 기법의 발전이 어우러져 점차 하나의 신생 예술 형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그 미학이 선승(禪僧)들에 의해 체계화된 것은 14세기에 이르러서였다. 돌 정원(석정)과 본세키의 명백한 공통점 외에도, 본세키는 많은 선(禪)의 원리를 담고 있다. 우선, 도구 자체가 정밀하게 통일되어 있지 않다. 클래스를 통해 들은 내용에 따르면, 본세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스럽고’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작업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연에는 패턴이 있지만, 인간이 쉽게 인식하거나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패턴은 아니다. 본세키를 제작하고 자연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는, 정돈된 위치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간직한 여러 요소들을 상상하고 느끼면서, 그를 자기 나름대로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티베트의 모래 만다라를 본 적이 있다면, 본세키의 덧없는(일시적인) 성격 또한 불교의 원리와 맞닿아 있음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티베트의 승려들은 모래로 장엄한 만다라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수년간 수련하지만, 완성되는 순간 그것을 불어 흩어버립니다. 본세키 풍경 역시 보존이 매우 어렵기로 유명한데, 산들바람 한 줄기만으로도 모래가 움직여 그림이 일그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기간 안에서도, 장인들이 사계절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모습을 바꿔 가는 본세키 작품도 있습니다. 제가 수강한 본세키 수업에서는 봄의 연못에 비친 후지산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서, 여름을 표현하도록 바꾸고, 그다음 가을, 마지막으로 겨울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렇게 본세키 제작은 그 과정 자체가 명상적이면서, 동시에 선(禪) 철학을 가르쳐 주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나의 본세키 체험
곧 있을 통역 준비를 위한 리서치 차원에서, 직접 본세키를 체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이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멋진 경험이었다.

본세키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무엇 하나 도중에 버려지는 재료가 없다는 점이다. 겨울에서 초봄의 설산을 묘사한 부분을 여름으로 바꿀 때에는 산에서 덜어낸 모래로 구름을 만들 수 있고, 가을에는 산의 능선을 길게 표현하는 것이 계절적인 기호이자 모티프이기도 하므로, 구름이 다시 산으로 합쳐진다. 하지만 사실적인 묘사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길을 잃기 쉬웠고, 어떤 사람들은 구름 대신 새를 그리기도 했는데, 돌이켜 보면 잔잔한 연못의 수면을 그리는 것도 괜찮았겠구나 싶었다. 학교의 미술 시간에는 가급적 보이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향으로 표현하도록 배웠지만, 본세키는 그 풍경이 주는 느낌, 그리고 현실에서 무엇을 연상하는 지를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또 하나 제 눈길을 끈 것은, 계절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였다. 나는 미국 동부 텍사스 출신이라 산에 익숙한 편은 아니다. 내가 상상하는 여름은 두툼하고 뭉게뭉게한 구름, 가을은 가늘고 얇은 구름, 그리고 겨울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다. 미네소타에 있던 시절에는 비교적 눈 오는 날이 많았지만, 가장 추운 날은 어디까지고 깨끗한 파란 하늘의 1월이었다. 그런데 이번 체험에서는 여름과 겨울에만 구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달은 겨울이 되어서야 더했는데, 어쩌면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달이 외로움의 상징이기 때문일까? 내가 본세키의 미학에 대해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동안, 동료는 초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는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고요한 물, 어둡고 끝없는 하늘에 맞서 굳건히 서 있는 산, 외로의 봄을 기다리는 초승달. 말로 표현하기 정말로 어렵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공감이 가는 풍경이었다. 영화 ‘뮬란’에서 야만족의 침략에 맞서는 황제의,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울부짖어도 산은 그 앞에 고개 숙이지 않는다는 대사가 떠올랐다. 이것이야말로 내게는 겨울을 완벽하게 담아낸 모습이었는데, 선생님은 산을 훨씬 크게 만들고, 구름을 더하고, 새도 더했다. 물론 능숙하고 아름다운 솜씨였지만, 결코 같은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그 순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 예술의 마법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동료의 작품은 결코 같은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질 수 없고, 사진으로는 그 진가를 도저히 담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했던, 찰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내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며, 어쩌면 이것이 본세키를 통해 자연을 느끼고 배우는 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마모토와 본세키
본세키가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은 15세기 아시카가 막부가 본세키를 귀족 사회에 보급하면서부터이다(아시카가 막부의 보기 드문 업적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본세키가 문화적 보물이 된 것은 센노 리큐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도를 아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센노 리큐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를 잘 알고 있다. 그 이전의 다실은 웅장하고 호화로웠으며, 다도 참가자 대부분은 부유한 귀족들로,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를 즐겼다. 그러나 센노 리큐는 단순히 화려하게 치장된 것만이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알렸으며, 이는 와비사비(侘寂) 라는 개념으로 통합되어 기존의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과 가치관을 180도 뒤집는 역할을 하게 된다.
와비사비는 서로 연관된 두 개념, 侘(와비)와 寂(사비)의 결합이다. 사비는 둘 중 더 단순한 개념으로, 고풍스러운 운치나 우아한 소박함을 가리킵니다. 다도에 쓰이는 다기를 본 적이 있다면,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릇과 잔들은 전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고 고풍스러우며, 언제나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듯하다. 한편 侘(와비)는 소박함에 대한 취향, 조용한 삶을 즐기는 마음, 그리고 무상함과 불완전함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일컫는다. 일본 미학에서 불완전함은 실수가 아니라 자연으로 구현된다. 그랜드 캐니언이 그 굽이굽이와 독특함 때문에 장엄한 것과 마찬가지로, 센노 리큐는 와비의 고유한 면모, 즉 불완전함 속의 완전함, 무상함을 일깨워 주는 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는 교토의 은각사에서도 볼 수 있다. 은각사는 금각사를 지은 건축가(설계자의 조부)에 대한 오마주로 은으로 덮일 예정이었지만, 설계자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의 미완성 상태 그대로 남아, 소박함과 무상함의 아름다움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센노 리큐의 다도에 지대한 공헌을 통해, 모든 다회를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一期一会)으로 소중히 여기도록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들과 같은 차를 마신다 해도, 인생에서 똑같은 순간은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다는 것, 그것이 와비사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첫걸음일런지도 모른다.

다도와의 유사성은 차치하더라도, 센노 리큐는 본세키를 직접 만들었으며, 이를 제자들에게도 전했다. 그 제자 중 한 명이 바로 구마모토 번을 다스린 호소카와 가문의 초대 당주, 호소카와 타다오키다. 센노 리큐의 가르침에 열성적으로 응답한 그는 본세키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그때까지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새로운 기법과 풍경을 개발하기 이르렀다. 이에 리큐는 그의 경지를 인정했고, 호소카와 산사이(호소카와 타다오키의 다인으로서의 이름) 본세키 유파가 창설되었다.

호소카와 가문은 구마모토 번에서 오랜 통치를 이어가며 구마모토 성을 더욱 확장했고, 문화인으로 유명한 타다오키의 아들 타다토시 역시 다양한 문화를 장려하여, 다도와 본세키를 비롯한 고급 예술을 즐기기 위한 전통 회유식 정원인 스이젠지 조주엔을 조성했다.
근대 이후의 본세
안타깝게도 메이지 유신 이후 본세키를 비롯한 전통 예술은 외면받았고, 그 결과 수많은 소중한 전통이 근대화를 좇는 과정에서 철 지난 구시대의 유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본세키도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잊혀진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후대의 수련자들은 이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고, 호소카와 유파와 그 기법을 지켜 왔다. 최근 들어 일부에서 전통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진 덕분에 본세키는 서서히 부활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자리에서 이따금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싶거나 직접 본세키를 체험해 보고 싶다면, 본세키를 지켜온 이 곳 구마모토를 방문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이젠지 조주엔을 통해 일본 정원을 감상하고, 이를 더욱 축약한 본세키로 일본 고유의 예술이 간직한 운치를 느끼는 일련의 코스는, 어디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안내와 수업은 일본어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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